바야흐로 지구촌의 시대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은 100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이다. 여기 머리색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토종 한국인 못지않은 두 사람이 있다.
캐나다인 그레고리 레이첵(Gregory Laycha·남·34세)씨는 런던 예술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미국인인 마리넬 나이즐리(Marinel Kniseley·여·31세)씨는 유타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재원이다.
경일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두 사람의 주말은 아주 특별하다. 다른 사람들이 번화가로, 휴양지로 가 휴일을 만끽하는 동안, 그들은 지역에 거주하고 계시는 할머니들을 만나러 간다. 그레고리는 사진을 찍고 마리넬은 녹음을 한다.
“다과와 함께 수다를 즐기다보면 친할머니보다도 더 깊은 친밀감을 느껴요.” 이 할머니들은 다름 아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다. 평소 독도 영유권 분쟁이나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레고리는 4년 전 한국을 소개하는 여행책자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짧은 글귀를 발견했다고 한다. 대구의 한 시민단체에 먼저 연락을 할 정도로 그레고리의 열정은 뜨거웠다. 무려 20만의 젊은 여성들이 인권을 유린당할 수밖에 없었던 참혹한 역사를 떠올리며 큰 아픔을 느낀 그레고리는 잔혹한 역사가 완전히 과거로 묻혀버리기 전에 할머니들의 모습을 필름 속에 담고자 마음먹었다.
마리넬 나이즐리 역시 같은 여성으로서 할머니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에 깊이 공감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레고리를 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할머니들은 저를 손녀딸처럼 대해주셨어요. 녹음과 편집 작업을 하면서 한국사회에 더욱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지요.”
마리넬은 느리지만 또렷한 발음으로 우리말을 구사했다. 마리넬에게 영향을 받은 그레고리 역시 할머니들과 더욱 깊은 소통을 하기 위해 한 시민단체의 한국어학당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만행에 분노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관심은 일회성에 그치기 십상이다. 지난 2월 ‘제958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참석했던 그레고리는 시민들의 참여율이 해를 거듭할수록 낮아지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아닐 경우에는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급급한 현실과 껄끄러운 소재라는 핑계로 외면당하는 동안 당사자이신 할머니들은 따뜻한 위로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채 노령의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는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일본의 보상과 진정한 사죄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는다면 후일 여성들의 인권유린은 언제고 다시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레고리는 그가 공들여 제작한 다큐멘터리 중 일부를 그의 사이트에 공개할 예정이며 그간 수집한 자료들을 조만간 경일대 학생들을 위해 전시하고자 한다. 이미 그의 열정을 알고 있는 몇몇 학생들은 특별한 뉴스가 있을 때 그들에게 스크랩을 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우리학생들은 리액션이 참 빨라요. 처음에는 영어에 서투르던 아이들도 피드백에는 빠르게 반응하죠. 우리는 우리의 제자들이 자기 일에만 집중하고 타인에게는 무관심한 이기적인 사람보다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해요.”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사회에 관심이 많은 그레고리와 마리넬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보다 더 심층적인 자료를 수집하길 원했다. 그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독도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도 제작하고 싶다는 소박한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