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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본 KIU

제목[문화산책] 마음을 수놓다-김영숙 디자인학부 교수

작성자
홍보비서팀
작성일
2012/08/27
조회수
822

[영남일보]2012/08/27

 

눈이 다 녹지 않은 마당 한쪽에서 붉은 꽃을 뚝뚝 떨어뜨리던 동백은 강렬한 색채 대비로 더욱 인상 깊은 꽃으로 남아 있다. 선운사나 해인사를 비롯한 고요한 산사에서 만나는 동백꽃은 더욱 매력적이다. 그런데 흔히 보는 동백과 다른, 한 나무에 다섯 가지 색깔로 피는 여덟 겹 꽃잎의 동백꽃이 있다는 글을 보고 아주 마음이 설?다. ‘오색팔중동백(五色八重冬栢)’.

사람 마음은 자기도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다. 그러니 사람 마음은 여덟 겹이 아니라 열 겹, 스무 겹이 되기도 한다. 자기 마음을 자기도 어쩌지 못할 때도 있는 걸 생각하면 오색팔중동백이야말로 사람 마음을 제일 많이 닮은 꽃인 것 같다. 때로는 하얀 꽃을, 때로는 붉은 꽃을, 때로는 노란 꽃을 피우기도 하는 것은 꽃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은 너무 여러 겹의 마음을 지니면 더 많은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고, 그 상처에는 아마도 더 많은 위로가 필요할 것 같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눈물과 웃음만으로 치유하지 못하는 상처도 있을 수 있다. 나는 바늘을 드는 쪽으로 다스리기도 한다. 옛날 방석에 수놓인 십자수 꽃무늬를 보거나, 베갯머리에 수놓인 원앙을 볼 때면 한숨을 내쉬며 놓은 것인지, 기쁜 설렘으로 놓은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땀 한 땀 남겨진 정성과 애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직녀로 살아온 나날이 짧지 않은 오늘, 베틀에 앉아 마음을 짜내려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견우를 이별한 옛날의 직녀에게는 그 긴 긴 이별을 견디게 한 베틀이었겠지만, 현대를 사는 이 직녀의 갈망은 견우에게만 있지 않고 베틀에 걸린 멋진 작품에도 있다. 그러니 옛날의 직녀에 비해 오늘날 이 직녀의 마음은 더욱 오색팔중동백에 가깝다.

가깝고도 먼 짝과 더불어 담백하게 살아가는 일도, 주변의 여러 사람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일도 따지고 보면 내 인생이란 한 폭의 천에 무늬를 새겨가는 일일 것이다. 곱기만 한 무늬가 새겨지지 않더라도, 가끔 얼룩이 지더라도, 그 때문에 다음에 새겨질 무늬가 더 환해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제도 오늘도 직녀일 뿐이고, 내일 역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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