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윤정헌의 시네마라운지] 오스트레일리아
- 작성자
- 이언경
- 작성일
- 2009/01/05
- 조회수
- 775
[영남일보] 2009/01/02
사랑과 모험의 대서사 종합선물세트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 애버러진(aborigin;호주 원주민) 출신의 성화 최종주자 캐시 프리먼(여자 400m금메달리스트)이 물기둥을 통해 불을 붙이자, 운집한 8만 관중은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대연출에 넋을 잃고 환호했다. 그러나 관중석 곳곳에서 호주 국기 아닌 애버러진 깃발을 흔드는 원주민들의 표정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평화스럽던 그들의 보금자리에 백인들이 상륙하고 영국왕실 영토임을 선언한 뒤, 졸지에 왕실 영토 불법침입자가 되어야 했던 지난날 선조들의 고행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오스트레일리아'는 애버러진의 슬픈 역사를 자양분 삼아, 2차 대전 전후 격동기에 남반부 신대륙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모험의 대서사 종합선물세트이다. 166분의 유장한 러닝타임은 기껏해야 동부해안(시드니, 골드코스트, 케언즈) 정도를 패키지관광하고 돌아오는 한국인들에겐 경이롭기만 한 북부 산악지대의 웅장한 비경을 인각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긴 러닝타임이 무색하게 플롯은 단순하기 그지 없다.
영국의 당찬 귀부인 새라 애쉴리(니콜 키드먼)가 신대륙의 카우보이(휴 잭맨)를 만나 남반부 신세계의 아름다움에 눈뜨고, 원주민 혼혈소년 눌라(브랜든 월터스)를 거두어 가족을 이룬다는 영화 전체의 얼개는 그대로 국립 호주영화제작소 호주판 새마을 홍보영화에 다름 아니다. 호주의 국민배우 니콜 키드먼과 휴 잭맨을 내세워 호주 근대사의 중요이슈(애버러진 혼혈아를 강제 입양한 '잃어버린 세대' 문제, 육우산업 독과점과 연관된 음모와 진실, 일본의 다윈 공습과 연관된 2차대전 폐해)를 적당히 버무리고, 앙증스러운 1인칭 애버러진 소년화자의 맑은 눈망울을 통해 인종적 화합을 도모함으로써 진정한 국가 정체성을 고양시키려는 영화의 작위적 메시지는 '짜고 치는 고스톱' 형 주문식 콘텐츠의 전형에 가깝다.
그러나 점차 서사(敍事)가 사라지고 일회성 트렌드와 황당한 감성만이 난무하는 근자의 영화판에서, 약간의 속보이는 유치함이 있을지라도 오랜만에 대서사의 높은 벽에 도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는 즐거움이 충만한 영화였다. 제자리에서 훌쩍 제 키를 뛰어넘는 캥거루의 비상을 보는 만큼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의미심장한 도약을 느끼게 하였다.
윤정헌<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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