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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본 KIU

제목[수요칼럼] 본질을 위하여

작성자
이언경
작성일
2008/12/17
조회수
680
[영남일보] 2008/12/17 우리는 본질보다 형상에 집착 산골 '초임교사' 시각 고집하면 우리 후손은 '코오피'도 모른채 무지랭이로 남아 있게 될 것 6·25전쟁 직후, 강원도 두메산골의 어느 중학교에 사범대학을 갓 졸업한 혈기왕성한 총각선생님이 부임했다. 담당과목이 국어였던 그는 이효석의 명문 '낙엽을 태우면서'를 가르치다 답변키 곤란한 질문을 받았다. 본문 중에 '낙엽타는 냄새가 코오피 향기 같다'는 대목에서 도대체 '코오피'가 뭐냐는 것이었다. 오늘날처럼 커피(코오피)가 대중적 기호물로 자리잡기 전인 당시의 산골학생으로선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질문을 받은 선생님 자신도 이에 대해 정확한 개념이 서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퇴근 후, 여러 종류의 사전과 씨름을 한 끝에 가까스로 '코오피'의 개념을 정리한 그는 이튿날 상처받은 초임교사의 자존심을 만회하기 위해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코오피란 것은 홍차, 코코아, 쌍화차 등속과 같은 기호식품의 하나다"라고…. 그러자 어제의 그 학생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럼 코코아는 뭡니까" 하고 물어왔다. 교사는 태연히 "코코아는 코오피, 홍차, 쌍화차 등속과 같은 기호식품의 하나지"라고 답변했다. 그 후에도 홍차와 쌍화차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네 개의 예시물 중 하나만을 뺀 교사의 기지(?)있는 답변은 친절히 계속되었다. 그러나 네 번에 걸친 눈물겨운(?) 설명에도 제자들이 도대체 이해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역시 두메 산골 아이들은 가르치기 힘들다"며 망연자실(茫然自失)하더라는 것이다. 선험적으로 공통의 중핵정보를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예시를 통한 설명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대상의 의미란 공통의 매개항을 통해 확장, 발산되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상의 성질을 본질적으로 규명하지 못한 비유나 예시는 한갓 말장난에 불과하게 된다. 우리네 현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매사에 창의적 시선으로 본질적 실체를들여다 보기보다, 우선 눈에 띄는 현상의 외형에만 집착해 안이하게 관행화하려는 성향이 곳곳에 만연되어 있는 듯하다. 오래 전, '보통 사람'의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군(軍) 출신 여당 후보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어린이를 안고 있던 홍보 포스터를 기억할 것이다. 이 선거용 인쇄물이 뜻하는 본질적 상징성을 제대로 요해(了解)하지 못한 채, 얼마나 많은 선거운동원들이 머슥해 하는 아이들을 냅다 낚아채 안고 볼을 비벼댔던가? 하루에도 수십 번 아이들을 안아 대느라 그네들의 팔과 어깨엔 파스자국이 늘어만 갔고, 영문 모르고 포옹의 고통을 당해야 했던 어린 아이들의 찡그린 표정 속에서 '보통사람'의 진중한 의미는 하늘 저편으로 송두리째 날아가고 있었다. 쌀 자급을 위한 정책적 의미가 충분히 국민에게 계도되지 않은 채, 제삿밥으로 백미 도시락을 싸 간 학생이 꿇어 앉아 반성문을 써야 했던 60~70년대의 풍속도는 아직도 우리 삶의 현장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각 관공서마다 현란하게 붙어 있는 친화적 캐릭터와 캠페인성 구호는 본질은 유기(遺棄)한 채, 껍데기만 난무하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초상화에 다름 아니다. 우수한 신진 연구인력 양성을 위한 창의적 고등교육사업인 'BK21사업'은 본래의 취지가 무색하게 지극히 외형적 평가방식으로 정량화되어 대학 예산 확보의 수단으로 전락하여 버렸고, 대학의 총체적 역량을 평가한다는 대교협의 대학종합평가에서 '최우수'나 '우수' 딱지를 한두 개 따지 않은 대학은 눈 씻고 찾아도 없을 정도이다. 우리가 계속, 본질보다는 정량화된 형상에 집착하는 강원도 초임교사의 시각을 고집한다면, 우리 후손은 언제까지나 '코오피'도 모르는 무지랭이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이남교<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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