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윤정헌의 시네마라운지] 눈먼 자들의 도시
- 작성자
- 이언경
- 작성일
- 2008/12/05
- 조회수
- 797
[영남일보] 2008/12/05
탐욕과 위선덩어리…인간의 역설적 참회록
브라질의 거장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일찍이 '시티 오브 갓'에서 뛰어난 영상미와 스피디하고 감각적인 프레임 워크를 통해 신에게 버림받은 도시, 리오의 어두운 풍경을 절묘히 담아냈다. 그런 그가 노벨상 수상의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 소설을 영화화한 '눈먼 자들의 도시'에선 빛을 잃은 세상의 생존방식과 그 치유적 메시지에 대해 깊이 천착하고 있다. 마술적 장치를 통해 현실사회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환상적 리얼리즘의 대가, 사라마구 소설기법과 사각(死角)을 구석 구석 찔러대는 메이렐레스의 압축적 영상미학이 만난 접점에는 권력과 폭력에 둘러싸여 무력하기 짝이 없는 한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은유(백색 실명증)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영화는 하루 아침에 집단적 백색 실명 상태에 빠진 눈먼 자들을 통해, 위장된 표피를 벗어던진 현대 인간의 추악한 본질을 폭로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인간존재에의 긍정'을 다층적 시선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눈앞이 하얘지는' 백색 실명증이 창궐한 도시엔 오물이 넘치고, 굶주린 견공이 사람 시체를 뜯고 있다.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안과의사(마크 러팔로)의 아내(줄리언 무어)는 극한상황 속 동물적 인간들의 모습에 치가 떨릴 뿐이다. 특히 제3병동의 '왕'(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과 그 일당들이 식량을 무기로 여자들을 강간하는 장면은 인간의 성악설을 증명해 보이는 선연한 상징이다.
눈먼 자들을 가둔 수용소와 익명의 도시를 배경으로 인간성의 근원적인 본질에서 그 가치와 존재, 현대 문명과 인간 사회를 조직화한 정치권력과 그 구조까지 비판적으로 성찰해내고 있는 '눈먼 자들의 도시'는 신이 내린 징벌로 눈이 멀고서야 진실을 보게 된 인간의 역설적 참회록이다.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두 성정(性情)인 이기심과 도덕심의 상반된 양상이 충격적 돌발상황 속에서 어떻게 변용되어가는 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영화 주제언어에 성큼 다가서게 된다. 아담과 이브 시절, 나신(裸身)으로 활보했던 인간이 '나뭇잎'(동복)과 '벌레 먹은 나뭇잎'(하복)을 거쳐 번지르르한 의복을 걸치게 되었지만 그 속엔 탐욕과 위선의 덩어리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영화이다.
윤정헌<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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