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윤정헌의 시네마라운지] 뱅크잡
- 작성자
- 이언경
- 작성일
- 2008/11/21
- 조회수
- 881
[영남일보] 2008/11/21
얼키고 설킨 플롯 '흥미만점'…
영화속 적대자들도 긴장감 더해
가을 극장가에 보는 재미 쏠쏠한 외화 한 편이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범죄 스릴러 전문의 로저 도날드슨이 연출한 '뱅크 잡'(The Bank Job)은 1971년, 런던 로이드 은행에서 발생했던 은행 강도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것뿐이라면 여느 갱스터 영화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당시의 실제 사건에서, 수백 개 은행 금고가 털렸지만, 100명 이상의 금고 주인들은 분실품 확인을 거부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체포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을 뿐 아니라, MI5(영국 국내정보국)에서는 2054년까지 그 전말을 기밀로 분류하여야만 했다. 무엇 때문에 이래야 했을까. 이것이 바로 이 영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1971년 런던, 카 딜러 테리(제이슨 스타뎀)는 옛 애인 마틴(새프런 버로스)으로부터 경보장치가 24시간 동안 해제되는 로이드 은행을 털자고 제안받는다. 마침 사채업자에게 협박당하던 테리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고 포르노 배우 데이브(대니얼 메이스), 사진작가 케빈(스티븐 캠벨 무어), 콘크리트 전문가 밤바스(알키 데이비드), 양복 재단사가이(제임스 폴크너), 그리고 곧 결혼할 예정인 새 신랑 에디(마이클 집슨)를 불러모은다. 13m 지하 터널을 뚫고 은행에 잠입한 이들은 수백 개의 안전금고에 보관 중이던 돈과 보석을 챙기는 데 성공한다. 여기까지는 이후 전개될 어마어마한 대반전의 기초공사에 불과하다.
호사가들이 이르기를, 영국에는 낮을 다스리는 엘리자베드 2세와 밤을 다스리는 마가렛 공주(엘리자베드 2세의 동생, 작고) 두 여왕이 있었다고들 한다. 언니보다 훨씬 미모이면서 남성편력의 왕성한 실험정신(?)으로 숱한 스캔들을 양산했던 마가렛 공주는 영국왕실의 시한폭탄이었다. 안전금고에서 털린 내용물 중엔 마가렛 공주의 도색 사진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희대의 부가가치가 탑재된 사진 행방을 쫓는 이들의 얽히고 설킨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영화 플롯을 흥미롭게 복층화시키고 있다. 강도사건을 해결하려는 경찰, 왕실의 체면을 지켜주려는 MI5, 사진을 걸고 왕실과 '섯다'판을 벌이는 범죄조직, 옛 애인의 위험한 게임에 말려든 테리 일당 등 영화 속 적대자들은 실상은 영화의 긴장감과 재미를 더하게 하는 숨은 협력업자들이다.
윤정헌<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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