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윤정헌의 시네마라운지] 아내가 결혼했다
- 작성자
- 이언경
- 작성일
- 2008/11/07
- 조회수
- 866
[영남일보] 2008/11/07
현실에선 가당치 않은 설정… 용인하기엔 "글쎄"
1980년대, 홍콩영화 '동방불패'의 히로인, 임청하는 숱한 한국남성들을 잠 못들게 한 고혹적 매력을 과시했다. 임청하의 점잖고 중성적인 이끌림에 청순미를 더한, 영화 '클래식' 요정 손예진의 등장은 이 땅의 남성들에게 또 다른 설렘을 안겨주었다. 그런 손예진이 '무방비 도시'에서의 어설픈 '팜므파탈' 실습을 접고 깨물어주고 싶은 요염한 자태로 다시 가을 은막을 노크하고 있다.
'제2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신인작가 박현욱의 동명소설을 정윤수 감독이 직접 각색해 스크린에 옮긴 '아내가 결혼했다'는 중혼(重婚; polygamy)이란 인류학적 제재를 다룬 쇼킹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보통 중혼이라면 남성 위주의 일부다처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유부녀가 남편 묵인 하에 다시 결혼한다는 일처이부 상황을 그린 것이어서 가히 '연애 판타지'의 새 전범을 창출하고 있다.
귀엽고 지적인 프로그래머 주인아(손예진)와 순진한 샐러리맨 노덕훈(김주혁)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쌍벽,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로셀로나의 광팬이라는 공통점에다 애정의 포인트까지 겹쳐 결혼에 골인한다. 그러나 갑자기 경주 근무를 자원하며 신혼의 합궁 재미를 앗아간 아내가 느닷 없이 또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통보해 올 때, 덕훈은 심수봉의 노래가사처럼 더 이상 '여자는 항구'가 아니라, '항공모함'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고정된 맨 땅에 착륙하는 공군 파일럿보다 움직이는 항공모함에 가볍게 연착륙하는 해군 파일럿은 훨씬 더 정교한 테크니션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육지가 아닌 항공모함을 자신의 기지로 받아들이기까지엔 가슴 찢어지는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다.
한 여인만을 애타게 사랑하는 우리 시대의 순진한 해군 파일럿, 덕훈이 정규항로를 이탈한 '방자한' 항공모함에 끝까지 순정을 바치는 모습은 눈물겹도록 애잔하지만, 그럴듯함(plausibility)에서는 '꽝'이다. 감쪽 같이 두 집 시어른을 모시고, 출산 후 두 남편과 시댁의 축하를 동시에 받으며, 두 시댁의 돌잔치를 연이어 벌이는 등, 현실에선 가당치도 않은 전설적 설정엔 객석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남편 몰래 잠행하는 잠수함이면 몰라도 버젓이 대양을 항해하는 항공모함을 용인하기엔 아직 세상의 잠금장치가 너무 견고한 것일까.
윤정헌<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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