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수요칼럼] 우리도 엘 시스테마를
- 작성자
- 이언경
- 작성일
- 2008/10/22
- 조회수
- 853
[영남일보] 2008/10/22
클래식 음악 교육 프로그램인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
청소년 인생 바꾼 성공사례…'대구예술영재교육원' 기대커
잉카문명의 대륙, 남미를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청소년 범죄이다. 코르도바 언덕의 예수상이 고혹적 미소를 흘려보내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코파히카나 해변 백사장에서 풍물 사진을 찍던 어느 사진작가는 등 뒤에서 밀어닥친 10대 소년 여남은 명에게 고성능 카메라를 강탈당했다. 그는 홍수처럼 밀어닥치는 차량물결 속에 결사적으로 뛰어들어 황망히 사라지는 소년들을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단다. 가이드의 충고를 무시하고 홀로 페루 리마의 달동네를 도보 순례하던 한국 어느 사찰의 스님은 갑자기 몰려든 동네 조무래기들에게 발가벗겨져 장삼(長衫) 속 쌈짓돈을 잃은 후, 팬티 차림으로 경찰서행 버스를 타야 했다. 콜롬비아 보고타의 어느 바에서 현지인 친구와 담소 중이던 중년의 배낭여행자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충격에 오금이 저렸다고 한다. 옆자리에서 소란을 피우던 앳된 얼굴의 10대들에게 정숙해줄 것을 요구했던 현지인 친구가 이들 중 한 명의 총격으로 그 자리에서 즉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태양과 정열의 대륙, 남미를 동경하는 숱한 여행자들이 오늘도 부푼 가슴으로 첫 발을 내딛지만 이곳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일찍이 브라질의 영화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가 '시티 오브 갓'(Cidade de Deus, 2002)에서 묘사했듯이, 10대 청소년마저 마약과 총기에 연루된 범죄조직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남미의 미래는 일견 암울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남미 청소년의 잠재력을 미래를 향한 뜨거운 응집력으로 승화시킨 성공사례가 있으니, 바로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el sistema) 운동이다. 엘 시스테마는 마약과 범죄에 젖은 베네수엘라 청소년들의 인성을 바꾼 클래식 음악 교육 프로그램이다. 유네스코에서 주목한 이 프로그램은 1973년부터 도시 빈민이나 농가출신의 아이들에게 무료로 악기를 나눠주고 클래식을 가르쳐 베네수엘라를 변화시킨 교육혁명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경제학자 출신의 정치가이며 아마추어 오르가니스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오에 의해 제창된 이 운동은 1973년 처음 시행된 이래, 세계굴지의 청소년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연주자 등을 위시해 지금까지 약 40만명의 수료생을 배출하면서 석유밖에 내세울 것이 없던 문화빈국 베네수엘라를 신흥 클래식 강국으로 부상시키는 데 절대적으로 공헌하였다. 6주 동안 하루 4시간씩 연주하는 조건으로 악기와 음악교육을 무상 지원하는 이 프로그램은 지금도 어린이와 청소년 25만명을 대상으로 방과 후 주경야독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데, 음악교사만도 1만5천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청소년오케스트라 200개, 유소년오케스트라 60개가 활약하고 있는데, 이에 자극받은 여타 남미 22개국에서도 이 모델을 실시하여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처럼 하나의 조그만 예술 문화 교육 프로그램이 모티브가 되어 국민정신을 계도하고 문화적 자부심은 물론 국가적 브랜드까지 제고시키고 있으니 그야말로 '싸게 먹힌' 문화교육 전략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대구시교육청이 음악·미술 영재를 대상으로 폐교를 리모델링한 장소에서 2005년부터 전국 최초로 운영해 오고 있는 '대구 예술영재 교육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올 2월, 영재 유스오케스트라가 스페인 4개 도시 순회연주에서 전원 기립박수를 받는 등 벌써부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어 지방단위 문화교육 인프라의 선도적 구축이란 측면에서 의의가 지대한 것이다. 엘 시스테마와 대구 예술영재교육원을 시금석으로, 우리도 소외된 환경에서 재능을 사장시키고 있는 모든 분야의 청소년들을 국가 차원에서 발굴해 조직적으로 양성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미래 성장동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남교<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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