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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본 KIU

제목[수요칼럼] 非情城市의 담론 방식

작성자
이언경
작성일
2008/09/24
조회수
894
[영남일보] 2008/09/24 새정부 출범 이후 반년간 국민들 다양한 의견 표출 상대 배려하는데는 소홀…대만 영화감독 혜안 試金石 1989년, 대만 출신의 허우샤오셴(侯孝賢) 감독이 연출해 그해 베니스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산마르코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비정성시(非情城市)'는 대만 현대사의 비극인 2·28사건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가정의 가족사를 지극히 담담한 시선으로 처리해 눈길을 끈 작품이다. 우녠전(吳念眞)·주톈원(朱天文)이 각본을 쓰고 량차오웨이(梁朝偉)·우이팡(吳義芳)·신수펀(辛樹芬)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한 시대의 정치·사회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한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요연히 보여주고 있다. 2·28사건이란 1947년 2월27일, 타이베이 중심가에서 발생한 담배행상 노파에 대한 국민당 단속반의 무차별 구타를 계기로 촉발된, 대륙 출신 외성인의 강압통치에 반발한 대만 출신 본성인들의 대규모 항쟁을 말한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국공내전 중임에도, 대륙의 2개 사단을 동원해 무차별 유혈 진압에 나서 무려 3만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허우샤오셴 감독의 '비정성시'가 돋보이는 이유는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동양영화이기 때문이 아니다. 대만 최대의 비극인 2·28사건을 다루는 절묘한 담론(discourse)방식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이야기라도 그 내용을 전하는 화자의 '말솜씨'에 따라 신경을 곤두세워 재미있게 듣기도 하고, 심드렁하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내기도 하며, 때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조차 하지 못하면서도 상대에게 고개를 끄덕일 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지극히 슬픈 내용인데도 말하는 사람이 먼저 격앙된 상태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주절대는 바람에, 실상 듣는 사람 자신은 그 비극성에 제대로 함몰하지 못하고 무덤덤한 기분을 맛보기도 하며, 너무나 서러운 자신의 사연을 남의 얘기하듯 담담히 읊조리는 바람에 듣는 사람이 먼저 목이 메게 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기도 한다. '비정성시'는 2·28사건이라는 대만 현대사의비극을 제재로 다루면서도 결코 격앙된 슬픈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2·28사건의 외연 속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임아록 노인의 아들 4형제가 맞는 파국의 과정을 극도의 초정적(超情的) 카메라웍으로 화면에 펼치고 있어 '감정의 절제'를 통한 영상미학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준다. 군의관으로 징병돼 실종된 둘째 아들 문상, 조폭 두목으로 비명횡사하는 큰 아들 문웅, 상대조직의 음해로 정신불구가 되는 셋째 아들 문량, 정치범으로 몰려 구속되는 귀머거리 막내아들 문청 등 네 아들의 비극을 정면에서 영상에 담기보다 사운드와 영상의 분리, 피사 인물의 원격 촬영, 편지 및 라디오 방송의 뉴스 대사로 대치되는 내레이션의 소략함 등 다양한 담론적 시도를 통해 숱한 사람의 비원이 내재되어 있는 격정적 대만 현대사를 너무나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풀어내고 있다. 네 아들과 그 가족의 이목구비에 카메라를 근접시키고 이들의 감정을 이 잡듯 포착해 화면에 옮겼더라면 우선 몇 사람의 관객을 울릴 순 있었겠지만, '비정성시'가 비정(非情)한 대만 근대사의 잔영으로 아직껏 우리 가슴에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자문해 본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도 반년이 훌쩍 흘렀다. 그간 우리 사회는 '쇠고기 파동'에서부터 '경부 대운하' '건강보험 민영화' '독도 문제' '영어몰입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숱한 이슈를 생산해냈다. 국민들은 각자의 소신과 형편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열정적 목소리로 표출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데만 골몰하여, 진실로 상대를 설복하고 감화시킬 수 있는 '소통의 진정성'에 대한 배려엔 소홀했던 것 같다. 은막에서 역사를 다루는 진기한 담론방식을 선보인 허우샤오셴 감독의 혜안을 통해 대상과 사물에 대한 직접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에 익숙한 우리 세대의 성급한 조바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남교<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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