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기고] 꽃들에게 희망을
- 작성자
- 이언경
- 작성일
- 2008/06/04
- 조회수
- 849
[영남일보] 2008/06/04
성난 민심 국정전반 확산
무한 경쟁의 실용주의 노선
'애벌레 기둥'과 상징 일치
정부가 희망주는 나비되길
성난 민심이 연일 전국에서 밤새워 거리를 메우고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이제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만이 아니다. 교육, 의료, 물류, 민영화, 대학 등록금, 대운하 등 국정의 전 영역으로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성난 민심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우선 정치적 접근에서 시작해야겠지만, 국정운영의 기본 노선에서 반성과 전환이 진지하게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동화를 읽어보자.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세상에 나아간 한 호랑 애벌레가 수많은 애벌레가 뒤엉켜 기를 쓰고 기어오르는 '애벌레 기둥'을 발견한다. 호랑 애벌레도 막연한 기대감에 대열에 합류한다. 애벌레들은 먼저 기둥을 오르려고 서로 밀치고 짓밟는다. 그런데 기둥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힘들여 정상에 오른 애벌레들은 이를 알고 절망과 분노하면서 밑으로 떨어지고 만다. 호랑 애벌레는 사랑하는 노랑 애벌레의 설득으로 기둥에서 내려온다. 우여곡절 끝에 고치를 짓고 나비가 되어 꽃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경제 살리기'란 대중적 슬로건을 표방한 현 정부의 통치 지향은 신자유주의다. 소위 성장 위주의 실용주의 노선이다. 속도와 무한 경쟁을 기본 원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애벌레 기둥'이란 상징과 일치한다. 정부의 실적 지상주의는 마치 무한경쟁체제의 '애벌레 기둥'을 만들어 놓고 전 국민에게 그 꼭대기에 행복한 삶이 있으니 온 힘을 다해 기어오르라고 독려하거나 올라야 한다고 협박하는 격이다. 물론 공평한 선의의 경쟁은 개인이나 사회 발전의 원동력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경쟁 시스템을 보면, 가진 자는 100m 경주에서 50m 앞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부조리한 경기를 통해 승자와 패자 간격은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진다. 소위 심각한 양극화가 생긴다. 뒤처지고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과, 그로 말미암은 생존의 위협까지 느낄 수밖에 없다. '가진자를 위한 정부'란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저 광장의 성난 함성의 진원지가 어딘지를 알아야 한다.
무한경쟁의 '애벌레 기둥'에서는 다른 사람을 짓밟아야만 내가 올라갈 수 있다. 호랑 애벌레는 자기가 사랑하는 노랑 애벌레조차 밟고 올라간다. 경쟁과 욕망의 늪에 빠져 노랑 애벌레의 간곡한 권유를 듣지 못한다. 무한경쟁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다. 이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와 가치를 경시하기 쉽다. 경쟁에 이기려고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편의대로 상대를 무시하고 속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 구호 중에 '무시한다, 속인다'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국민을 무시하고 속이는데 등 돌리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경제가 만병통치라는 편향된 생각 때문에 정말로 소중한 가치가 얼마나 많이 희생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진정한 머슴으로서의 역할은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이런 소통을 통해 인간적인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애벌레는 고치의 어둡고 외로운 공간에서 자신을 깊이 성찰했기에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나비가 되었다.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의 한복판에는 개인이 위치한다. 너와 나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공동체는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이럴 때 자유는 타자와의 관계가 빠진 나르시시즘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고치의 과정을 거쳐 자유를 얻은 나비는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살지 않는다.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운반"하는 희망의 전도사가 된다. 나비가 없으면 세상에는 꽃도 없다. 나비의 존재 의의는 여기서 빛난다. 물량적 가치와 경쟁의 원리보다 인간 상호존중과 상생을 중시해야 한다. 상생은 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가능하다. 상생은 생명이고 희망이다. 정부는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가 되어 국민에게 다가가 보라. 꽃에 나비가 필요로 하듯이, 국민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정부가 되라..
신재기 <문학평론가·경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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