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윤정헌의 시네마라운지] 아임 낫 데어
- 작성자
- 이언경
- 작성일
- 2008/06/05
- 조회수
- 896
[영남일보] 2008/06/05
일곱색깔 자아 이미지화, 파격적이고 실험적 영화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면, 밥 딜런의 전기영화 '아임 낫 데어'에는 표제 그대로 밥 딜런이 없다. 1960년대를 풍미하고도 아직 건재한, 팝계의 살아있는 전설 밥 딜런의 전기적 초상을 각기 다른 인물에 의탁해 분할 재현한 토드 헤인즈 감독의 아임 낫 데어는 새로운 방식의 '바이오그래피 필름(biography-film)'이다.
1941년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로버트 짐머먼'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딜런은 60년대 초반 포크 가수로 데뷔했고, 2006년작 '모던 타임스'까지 40장에 가까운 음반을 발매했다. 비틀스와 함께 60년대 대중문화계를 지배했고, 시적인 가사로 인해 매년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며 고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직접 쓴 자서전은 '셰익스피어의 잃어버린 일기'라는 극찬을 받았는가 하면, 퓰리처 상은 현대 문화에 끼친 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수상부문을 추가했다.
영화 속에서 그의 이러한 파노라마틱한 삶은 6명의 배우(벤 위쇼, 크리스찬 베일, 리처드 기어, 마커스 칼 프랭클린, 히스 레저, 케이트 블란챗 )에 의해 7개의 애펠레이션(아서, 잭, 존, 빌리, 우디, 로비, 쥬드)과 6개의 분신(시인, 혁명가, 무법자, 가짜, 유명인, 뮤지션)으로 분류된 뒤, 치열한 분석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하여 밥 딜런이 살았던 시대의 인생방정식을 다채롭고 심도있게 완성해 나간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스펠 가수, 서부 개척시대의 은둔자, 깡마른 여배우, 시인, 백인남자, 흑인소년 등 밥 딜런의 내면을 고스란히 담아낸 페르소나(persona;가면)들은 영화 전편에 깔린 50여 곡의 사운드와 영음(映音)의 조화를 이루며 한 대중음악가를 이 시대의 문화혁명가로 통합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전기영화의 정체성 시비가 불거질 정도로 이 영화는 실험적이다. 실존 인물을 고정 배역의 캐릭터가 사실성에 기초해 시종일관 끌고 나가는 기성작품들에 비해 밥 딜런 특유의 시적 가사를 재구성한 7색 이질적 자아를 몽환적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파격적이다. 그래서 그만큼 더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평소 '동문서답'식 요설로 악명이 높았던 밥 딜런의 카멜레온적 실체를 가장 딜런스럽게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선택한 감독의 탁월한 안목에 '아임 낫 데어'가 아닌 '아임 히어'를 외칠 수 밖에….
윤정헌<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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