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일보] 대학교육개혁, 자율과 함께 원칙도 중요 [수요칼럼]
- 작성자
- 장규하
- 작성일
- 2008/01/16
- 조회수
- 719
2008/01/16
'경쟁과 자율'의 교육정책
교원확보율 원칙 불공평
저급한 실용주의 경계를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차기 정부는 전폭적인 교육개혁을 단행할 방침이다. 그 개혁의 기조는 '규제와 간섭'에서 '경쟁과 자율'로 요약된다. 규제 위주의 교육정책이 얼마나 많은 문제와 모순을 초래하는지를 경험한 우리 사회는 일단 '자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규제보다 자율이 가치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자율에 못잖게 기본 원칙 또한 중요하다는 점이다. 원칙을 준수하지 못하는 자율은 엄청난 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 교육은 원래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바람직한 인간을 육성한다는 점에서 목표 지향적이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율 이전에 기본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지금 인수위가 제안하고 있는 교육개혁정책 중 가장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대입자율화다. 그 내용을 보면 수능과 내신반영 비율을 대학 자율에 맡기고, 수능과목을 축소한 뒤 대입을 완전 자율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자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당면한 교육 문제를 '교육개혁→대학 자율화→대입제도 개선'으로 연결시키는 발상은 대학교육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소외시킬 여지가 크다. 대입제도가 온 국민의 현실적인 관심사인 만큼 관심을 집중해야 하지만, 대학교육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고려돼야 할 다른 큰 문제도 있다는 말이다.
그 중 하나가 교원확보율이다. 1996년 7월에 공표된 대학설립·운영 규정, 이른바 준칙주의에 적용을 받는 40여개 대학은 교원확보율 100%를 충족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그런데 1996년 이전에 설립된 전국 160여개 대학은 이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워 교원확보율에 대한 충족 여부 근거 규정이 없는 실정이다. 한국교육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월10일 현재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전문대학이 68.1명이고, 대학은 36.4명(국립대학 29.8명, 사립대학 38.5명)이다. 이는 OECD국가평균의 3배에 가깝다. 1970년을 기준으로 볼 때 초·중·고등학교는 절반이 줄어든 반면, 고등교육은 거의 2배 정도가 늘어났다.
새 정부는 '준칙주의'와 같은 후발 대학에만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불공평한 정책은 개혁하고 대학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원칙을 마련해 이를 지켜나가는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교원확보율과 같이 중요한 원칙이 만약 자율이라는 개념의 편의적 해석에 의해 유야무야된다면 우리나라 대학은 세계화된 교육시장에서 낙오하고 말 것이다. 교육은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수평적 상호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이뤄질 때 바람직하다. 교수와 학생이 수직적 관계로만 남는다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지식만 흐를 뿐 상호교감이 불가능하다. 100명에 가까운 학생이 수강하는 강의실에서 아무리 뛰어난 교수가 강의를 하더라도 그 교수에게 수강생은 익명의 학생일 뿐이다. 정책 수립자들이 이 중요한 과제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교원확보율과 같은 문제는 자율 이전에 반드시 지켜져야 할 대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율과 경쟁이란 밑그림에서 출발하는 이번 정부의 교육정책은 철학적인 면에서 실용주의에 그 맥이 닿아 있다. 실용주의는 실제적 유용성이 진리를 판별하는 기준이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20세기에 들어와 식민지 체제를 극복하고 근대화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실용주의 가치관을 우선으로 삼아왔다. 본질주의와 관념적 명분주의를 배척하고 현실적인 적응력을 추구함으로써 초단기간에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사회공동체 의식이 약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실용주의 가치에 너무나 길들여져 그것의 극단적 폐단이 심각할 정도다. 현실적인 효용성을 위해서는 원칙을 융통성 없는 것으로 매도하고, 도덕을 고루한 명분으로 경시하는 것이 문제다. 이번의 교육개혁이 표방하는 자율과 경쟁도 저급한 실용주의에 함몰하여 원칙을 도외시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성동(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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