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일보]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 작성자
- 장규하
- 작성일
- 2007/12/14
- 조회수
- 852
2007/12/14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
프랑스 특유의 연애정서 고스란히
작위적이고 도식적 결말 기대이하
지난 해, 할리우드 영화의 대공세 속에서도 프랑스 영화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던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가 바야흐로 초겨울 은막을 달구고 있다. 2006년 11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판의 미로' 등과 경쟁해 첫 주에만 3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3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라, 흘러간 옛 프랑스 영화의 명성을 향유케 한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은 제목(appellation)에서부터 로맨틱 코미디의 체취가 넘쳐 흐른다.
향수 코디네이터인 노총각 '루이스'(알랭 샤바), 엔틱 디자이너인 노처녀 '엠마'(샬롯 갱스부르), 이들 두 전문직 싱글 남녀의 구애심리와 대인관계를 통해 할리우드나 영국 드라마와 변별되는 프랑스식 애정풍속도를 은은히 펼쳐보이는 이 영화엔 프랑스인 특유의 고립적 인생관과 연애정서가 고스란히 용해되어 있다.
일찍이 딩크(dink; double income no kids, 아이를 갖지 않고 맞벌이의 경제력으로 인생을 즐기는 지극히 개인주의적 부부)족 신화의 기원이 되었고 같은 서구권에서도 이기적이라며 경원시되는 프랑스의 독특한 국민성은 어제 오늘 호사가들에게 회자(膾炙)된 게 아니지만, 영화에서 묘사되는 두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적 원형도 이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다.
혼자 사는 일상이 편리하고 익숙한 루이스가 엄마와 다섯 누이의 닥달에 떼밀려 친구의 여동생 엠마를 약혼녀 대행으로 고용한 뒤, 결혼식 당일 파혼한다는 작전이 루이스 어머니의 혼절로 예기치 않게 꼬인다는 전체 플롯은 로맨틱 코미디의 전범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한편 결혼이라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과정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귀여운 아이 입양을 위한 수단으로서 서류상 남편이 필요한 엠마에게도 루이스가 밑질 것 없는 상대이기는 마찬가지다. 이기적 목적의 동상이몽 남녀가 한 배를 탄다는 설정은 프랑스적 상황의 상투적 전형성을 상징화하는 파편인 동시에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피해 갈 수 없는 이 영화의 분명한 한계이다.
작위적 결말로 마무리되는 프랑스식 연애방정식의 도식성이 관객의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심야극장을 나서는 젊은 연인의 하품 섞인 심드렁한 표정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표를 기대하긴 힘들 것 같았다.
윤정헌(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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