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일보] 윤정헌의 씨네마 라운지
- 작성자
- 장규하
- 작성일
- 2007/11/02
- 조회수
- 594
2007/11/02
카핑 베토벤
베토벤에 보내는 헌사인 동시에
카피스트를 위한 경이로운 다큐
금세기를 대표하는 여류감독 아그네츠카 홀랜드의 '카핑 베토벤'은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음악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여성감독의 섬세한 내공으로 만들어진 광기어린 천재 작곡가 베토벤에 보내는 헌사인 동시에 그의 마지막 교향곡(9번 합창)의 탄생비사이며, 베토벤 이상의 천재성을 자랑했던 여성 카피스트(초벌 악보를 연주용으로 옮겨 베끼는 사람)에 대한 경이로운 다큐멘터리이다.
자신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교향곡'의 초연을 앞두고 있던 베토벤(에드 해리스)은 자신이 그린 악보를 연주용으로 카피하기 위한 유능한 카피스트를 찾던 중 우연히 음대 우등생인 안나 홀츠(다이앤 크루거)를 추천 받는다.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카피스트 '안나 홀츠'와의 만남이 달갑지 않던 그였지만 첫 날 그가 잘못 표기한 음을 간파하고, 스스로 고쳐 그려놓은 것을 보고 그녀의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괴팍스럽고 폭력적이기까지 해 주변인들을 항상 긴장시키던 베토벤을 사로잡은 젊은 여인 안나 홀츠, 그녀는 과연 누구인가? 영화는 이 신비스러운, 그리하여 역사상의 전거가 불확실한 여인을 은막 위에 재구성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정확히 60개의 원두를 이용한 그만의 커피를 정해진 시간에 만들어 마셨으며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였고 밤 9시가 되면 괴테나 쉴러를 읽으며 잠자리에 들었던 기인(奇人). 동시에, 영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실존적 이발사 에드 크레인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월광 소나타'에 생애를 담보한 예인(藝人)으로서의 베토벤의 영화적 위상은 오로지 안나 홀츠에 의해서만 완성되어지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었던,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악성(樂聖)을 순화시킨 안나의 카리스마는 그녀의 천재적 재기와 성실한 마음가짐, 그리고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용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단순히 영웅의 주변에 묻혀진 비하인드 스토리의 창궐로 치부하기엔 당대의 복식 및 18세기 비엔나 재현에 쏟은 정성이 놀라울 뿐이다. 그러나 '9번 교향곡'초연의 클라이맥스 시퀀스를 기점으로 영화적 긴장도가 떨어져 마지막 메시지가 약해졌음을 모른 척 할 순 없겠다.
윤정헌(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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