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일보] 행복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 작성자
- 장규하
- 작성일
- 2007/10/19
- 조회수
- 622
2007/10/19
허진호 감독의 '행복'은 사랑에 속고 이별에 우는 또 하나의 신파다. 예상대로 심야의 극장을 나서는 젊은 연인들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 세속적이고 무책임한 도회남자가 헌신적이고 순진한 시골처녀와 사랑을 나누다 배신한다는 최루성 설정은 기본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마지막 뒤처리가 밋밋한 탓인지 은막에 혼을 뺏기고 엔딩 크레딧의 여운을 음미하는 관객은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지극히 통속적인 비련이어서 가슴이 에이지만 너무 뻔해서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는 앞자리 젊은 새댁의 촌평이 낯설지 않았다.
방탕한 서울 남자 영수(황정민)는 간경변이 악화되고 경영하던 바까지 도산하자 시골 요양소 '희망의 집'에 몸을 의탁한다. 적응이 느린 영수에게 다가서는 사람은 요양소에서 8년을 기거한 폐농양 환자 은희(임수정). 평생 죽음을 벗삼아 살아온 그녀는 강인하다. 용기를 내 사랑에 빠진 영수와 은희는 요양소를 나와 빈집을 보금자리로 삼고, 서로를 간호하며 행복해진다. 그러나 먼저 병에서 회복한 영수는 바깥 세계를 곁눈질하기 시작한다. 도시에 두고 온 화려한 생활과 옛 애인 수연(공효진)이 손짓하고, 별안간 길어진 미래는 그를 압박한다. 비겁한 남자는 술의 힘을 빌려 애원한다. "니가 날 떠나주면 안 되겠니?"
'행복'에는 '러브 스토리'의 사별담과 '승방비곡'의 비장미와 '순애보'의 희생정신과 '찔레꽃'의 아쉬움이 녹아있다. 그러면서 세속적 탐욕과 희열을 포기할 수 없는 현대인의 부도덕하지만 정직(?)한 욕구가 담겨져 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회한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양심의 끝자락도 빠뜨리지 않는다.
여리면서도 뻔뻔한 남자를 연기한 황정민과 한 송이 꽃처럼 가련한 비련녀로 분한 임수정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다. 두 사람 모두 '감정몰입의 달인'이란 찬사가 허언이 아님을 느끼게 한 열연이었다. 그러나 제목(행복)의 메시지에 매달린 탓인지 이들의 사랑이 영그는 행복의 정점에서 비련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대목이 너무 상투적이어서 아쉬웠다.
영수를 떠나 보낸 뒤, 잠깐 다시 등장하는 은희가 운명 직전의 모습인 것이 통속극의 깔끔한 이별방정식인지 끝내기의 완급을 조절못한 미숙함인지 혼란스러웠다.
윤정헌(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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