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일보]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 작성자
- 장규하
- 작성일
- 2007/10/05
- 조회수
- 636
2007/10/05
본 얼티메이텀
탈냉전시대 첩보원의 고뇌 다뤄
로버트 러들럼의 동명 베스트 셀러 3부작의 영화적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본 얼티메이텀'은 전작 1·2편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의 플롯에 빚지고 있지만 이들과는 또 다른 흡인력으로 관객에게 손짓하고 있다. 탈 냉전시대 첩보원의 새로운 초상을 형상화했대서 화제를 모은 제이슨 본(맷 데이먼)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3편인 '본 얼티메이텀'에서 더욱 빛난다.
사고로 잃었던 기억을 단편적으로 되살리던 제이슨 본은 자신을 암살자로 만든 이들을 찾던 중 '블랙브라이어'라는 존재를 알게 된다. '블랙브라이어'는 비밀요원을 양성해내던 '트레드스톤'이 국방부 산하의 극비조직으로 재편되면서 더욱 막강한 파워를 가지게 된 비밀기관. 영화는 '블랙브라이어'의 실체를 찾아가는 본을 앞세워 모스크바, 토리노, 런던, 마드리드, 탕헤르(모로코), 뉴욕 등을 오가며 초강력 액션을 선보인다.
우리는 '첩보원'이라면 미남형에 만능해결사요, 본드걸에 둘러싸인 '007'을 연상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살얼음판 같은 험로(險路)를 내딛는 본에게 007과 같은 여유는 허영이요, 사치다. 호시탐탐 그의 목숨을 노리는 거대조직 CIA의 추적으로부터 고단한 육신을 돌아볼 틈도, 죽은 애인의 넋을 추모하며 마음놓고 오열할 촌음(寸陰)도 허락되지 않는다. 오로지 살기 위해 첩보원의 본능적 촉수를 전방위로 움직여야 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실존적 고뇌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맹목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기계적인 첩보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실존의 벽을 더듬는 내성적 사유의 첩보원을 만나게 됨은 이 영화만이 선사하는 프리미엄이다. 개인의 사유를 유보하고 오로지 지령과 지침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냉전시대의 첩보원 강령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본의 살인적 완력 뒤에 숨겨진 고뇌를 통해 관객은 한 인간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군중 속 추적보행의 숨가쁜 장면을 연출한 워털루역 저격 시퀀스와 탁월한 동선처리, 공간이동의 진수를 보여준 탕헤르의 격투 시퀀스는 정통 첩보영화의 맥을 잇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간병기로서의 가공할 육체성과 '스파이의 존재론적 탐색'에 이르는 진정한 정신성이 공존하는 영화이다.
윤정헌(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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