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일보] 윤정헌의 시네마라운지
- 작성자
- 장규하
- 작성일
- 2007/09/14
- 조회수
- 684
2007/09/14
조디악
40년전 엽기 연쇄살인 조명
쫓는자의 고뇌와 좌절 그려
연쇄살인을 다룬 '세븐'으로 스릴러 영화의 신기원을 열었던 데이빗 핀처 감독이 미제로 남겨진 40년 전의 엽기적 연쇄 살인사건을 들고 다시 스크린을 노크했다. '조디악'은 1960년대 후반 샌프란시스코 일원에서 실제 일어났던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조디악 킬러'사건이라 불리는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아직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그런 면에서 이 사건은 우리의 '화성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과 여러모로 맞닿아 있고, 영화 또한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살인의 추억이 '화성 사건'의 전반적 재추론을 통해 범죄자의 심리와 수사관들의 고충, 그리고 당대 시대상황 등을 반추함으로써 추리스릴러물로서의 총체적 긴박감을 고조시키는 데 비해, 조디악은 범인이나 범죄 그 자체보다는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범인에 집착하는 '쫓는 자들'의 고뇌와 좌절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1969년 8월1일 신문사에 처음 자신의 살인행각을 담은 편지를 보낸 이후 1978년 4월25일 마지막 편지까지 암호만 던진 채 잡히지 않고 미국 전역을 공포로 밀어 넣은 살인마 '조디악 킬러'. 영화는 이 희대의 '암호 살인자'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두 권의 책과 방대한 인터뷰, 경찰의 조서를 근거로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재구성된 조디악에는 이 사건의 강박관념으로 인해 서서히 망가져가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제시된다. 감독은 일말의 애증(愛憎)도 없이 이들의 침몰을 냉정히 카메라에 담고 있다. 범인의 암호 해독에 집착했던 만평가 그레이스미스(제이크 질렌할)는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고 경찰에 앞서 발빠른 보도로 의욕을 불태웠던 간판기자 폴 에이브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마약중독으로 망가졌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시경 강력계의 정력적인 두 민완(敏腕)형사, 토스키(마크 러팔로)와 암스트롱(안소니 에드워즈)은 타락하고 좌절했다.
영화는 "이 사람이 제게 총을 쏜 사람이 맞다고 확신합니다"라고 증언하는 피해자의 클로즈업숏으로 끝난다. 극장을 나서며 잡힐 듯 말 듯, 아직까지 이들 '쫓는 자들'의 주변을 맴돌고 있을 범인의 환영이 뇌리를 짓눌러 왔다.
윤정현 (경일대 교육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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