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일보] 사진작가 석재현씨는 中서 풀려난 뒤?
- 작성자
- 장규하
- 작성일
- 2007/09/07
- 조회수
- 663
2007/09/07
"올 여름 인도 국경지역 갔다 또 억류될 뻔했죠"
교수 타이틀 떼고 다시 학생 신분으로 급선회
기억이 저장된 각각의 폴더에서 오래된 공포를 다시 재생시키는 일은 소름끼치는 일이다. 그것이 진물 뚝뚝 떨어지는 '억류의 공포'라면 정도는 더 심하다.
2003년 1월 중국 옌타이에서 탈북자들을 취재하다 중국 공안에 체포돼 1년2개월동안 수감생활을 한 프리랜서 사진작가 석재현씨. 석방된 지 벌써 4년8개월. 그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취재에 나섰지만 처음에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소름끼치는 공포를 애써 다시 기억해 내는 일, 어쩌면 그것은 그에게 또다른 공포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달랐다.
"아직도 기회만 된다면 중국에 다시 들어가고 싶어요. 석방되고 1년6개월쯤 지났을 때 중국 땅을 밟을 기회가 한번 있었는데 못 갔어요. 당시 중국 핑야오에서 열리는 사진축제에 초대를 받았는데 입국허가가 나질 않더군요. 그래도 꼭 한번 중국을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에 단체관광객 사이에 끼어 들어가려고도 했는데 결국 실패했죠."
그는 아직까지 중국공안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 하지만 그는 중국에 대해 여전히 미련이 남아있는 듯 했다.
석방 후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미국에서 수감중인 로버트 김 구명운동이었다.
"동병상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석방되고 제일 먼저 아내와 로버트 김 돕기 범국민지원센터를 찾았죠. 외국에 나가면 '한국인'임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데 중국에서 옥살이를 경험한 저로서는 로버트 김의 불운이 남의 일 같지 않았죠."
석방과 동시에 그는 더욱 바빠졌다. 국내외 각종 전시회 참여는 기본이고 무엇보다 경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로 임용되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해에는 대구사진비엔날레에 큐레이터로 참여해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작년에 계약이 끝나 학교를 나왔지만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해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눈에 보이는 성과도 있었죠. '조선다큐국제사진어워드'라는 국내 사진대회가 있었는데 제가 가르친 제자들이 2위와 4위에 올랐죠. 그 일로 총장님께 밥 한그릇 얻어 먹었습니다.(웃음)"
교수라는 타이틀을 떼자마자 그는 학생신분으로 급선회했다. 그는 작년부터 경북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젊은 나이에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학문적 소양이 무엇보다 절실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달부터는 계명대에서 강의도 다시 시작했다.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의 일관된 주제는 '사람'이다. 중국에서 억류되기 직전에도 그는 탈북자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절박한 이유를 렌즈에 기록하고 있었다. 석방후에도 투병중인 정신대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렌즈에 기록하는 일에 매달렸다. 작년 1월에 연 개인전 '고향을 지키는 소나무' 역시 사람들 이야기였다.
올 여름 한달동안은 인도에 다녀오기도 했다. 물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내면을 이미지로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일이 또 터졌다.
"국경지역에서 사진촬영을 하다가 군인들에게 잡혔습니다. 처음엔 허락을 받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스파이' 취급하며 몸을 수색하고 가방을 뒤지기 시작하더군요. 결국 어디론가 끌려가는데 그때 갑자기 중국에서 억류되던 그때 당시의 급박한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휙휙 스쳐가더군요. 아무튼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설득이 안돼 나중에는 '돈이라도 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초범도 아닌데 또 걸려서 국민들 걱정하게 만들겠구나.' 어느 순간부터 부끄럽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다행히 끌려가는 도중에 간부급 군인의 도움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합니다."
마치 군대생활 이야기 하듯 '인도 사건'을 이야기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렇게 위험한데 또 가고 싶으세요?"
주저없이 그의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중국이든 인도든 분쟁지역이든 상관없습니다."
아마도 4년8개월 전, 중국에서의 그 끔찍했던 공포는 애초에 그의 기억속에 저장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백승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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