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일보] (주)에이원 이재화 사장 [경북경제 여성이 이끈다]
- 작성자
- 장규하
- 작성일
- 2007/05/04
- 조회수
- 525
2007/05/04
'밑바닥 경험쌓아 성공 일궜죠'
민원부터 재무제표까지 전기업계 멀티플레이어
남자들도 힘겨워하는 76만5천V용 송·변전 건설공사업에 뛰어든 (주)에이원 이재화 사장(여·52)은 전기공사업계에선 보기드문 여성 CEO다.
지금과 달리 한때 여성이 이 업계에 진출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만큼 이 사장의 경영능력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가 전기업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4년. 고교 졸업과 동시에 입사한 대구 천일전기회사 경리사원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그는 남다른 성실성으로 차츰 회사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게 됐고, 이어 한국전기공사협회 경북지회로부터 관심을 끌게 돼 마침내 경북지회로 스카우트돼 정식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
남자 직원들도 고된 업무를 여성이 맡아 그로서는 힘겨운 나날이 이어졌다. 그는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했다. 이 사장이 다시 전기공사공제조합으로 직장을 옮긴 것은 1982년 남편 서보일씨(52)를 만난 후였다. 결혼과 동시에 사직해야 하는 당시의 사회풍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전기공사업과 관련한 모든 행정업무를 거의 통달한 뒤였다. 민원업무를 비롯해 재무제표까지 마스터한 것도 그동안 이 업계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회사를 그만 둔 그는 한동안 전국을 돌며 전기공사업 입찰 대행일을 맡았다. 그때부터 그는 전기공사업계에서 차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졌다. 그후 포항의 제일전기로 자리를 옮겼고, 병원에서 근무하던 남편마저 전기업계로 끌어들였다. 이 사장은 "남자들만의 거친 세계지만 남편이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주기 때문에 그다지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노동현장에서 6개월간 직접 경험을 쌓은 남편으로부터 내조 아닌 외조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그러던 그가 남편과 함께 전기공사업계에 뛰어든 것은 90년 대구에서였다. 93년까지매출도 오르고 어렵던 살림도 커나갔다. 하지만 그후 전주에 올라갔던 남편이 추락하는 사고로 회사는 차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는 학문에 대한 열정을 접을 수 없었다. 은행으로부터 300만원을 융자받아 96년 경동정보대학에 등록했고, 98년에는 경일대 경영학과로 편입해 무려 3번씩이나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성적도 4.5점 만점에 평균 4.2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는 2002년 다시 영남대 행정대학원에 들어가 공공정책 관련 석사학위도 받았다. 현대판 또순이가 따로 없었다.
학업을 이어가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회사일을 그만두지 못했다. 2000년 공사실적이 1억원이던 그는 필리핀 송전공사에 뛰어들었고, 또다시 5억원이라는 거액을 날려야 했다. 맨손으로 귀국 비행기에 오른 그는 두손을 불끈 쥐고 '다시 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러던 그에게 행운이 다가온 것은 2002년부터였다. 큰 공사를 잇따라 수주하기 시작한 그는 2005년에는 공사 수주액만 70억원을 넘겼다.
이 사장은 "2005년 방폐장 경주유치와 한수원 경주이전 등 공사수주를 위한 호재를 예상하고 과감하게 회사를 포항에서 경주로 이전했다"면서 "욕심이지만 올해에는 공사수주 목표를 100억원으로 잡고 있다"며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
포항시 양포읍에서 태어난 뒤 부모를 따라 경주로 이사한 그는 경주 계림초등 59회 졸업생이다. 그는 고향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고 했다. 이 사장은 여성으로서 보기 드물게 정치에 대한 욕심도 숨기지 않고 있다. 여성이 만드는 깨끗한 정치가 꿈인 그는 '국민 모두가 잘사는 정치, 잘사는 나라 만들기'가 정치권과 경제계가 공동으로 일궈내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임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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