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 윤정헌교수의 '시네마 라운지'
- 작성자
- 이미경
- 작성일
- 2005/06/24
- 조회수
- 944
영남일보 2005 06 23
시네마 라운지] 간 큰 가족
난장판 '통일 사기극' 코미디 덧칠, 설정 기발하나 예정된 결말 '흠'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마누라 앞에서 북에 두고 온 마누라 타령만 해대는 간 큰 남편 김 노인(신구)은 오매불망 북에 두고 온 아내와 딸을 만나는 게 소원인 실향민이다. 간암 말기 아버지에게 50억원 유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 하지만 이 유산은 통일이 되었을 경우에만 상속받을 수 있다는
기이한 조항을 달고 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과 자칫 통일부로 전액 기부돼 버릴 뻔한 50억 유산을 사수하기 위해 가족들은 통일이 되었다는 담화문을 담은 가짜 뉴스 프로그램을 제작해 임종 전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감쪽같이 가짜 통일 상황을 믿게 만드는 데 성공하는데.
'간 큰 가족'은 코미디를 빙자한 감동적 드라마이다. 통일의 염원을 한으로 간직한 시한부 인생의 노인을 위해 가족들이 벌이는 한바탕 소동은 그 이면에 돈에 얽힌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손치더라도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 구성원으로서의 공감대를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리하여 한 편의 통일 사기극은 3류 에로영화 감독인 둘째 아들 명규(김수로)의 연출 아래 그의 휘하 배우 춘자(신이), 큰 아들 명석(감우성)과 처(이칸희), 김 노인의 아내(김수미) 등을 중심으로 발단하여 사채업자 박상무(성지루)를 비롯한 동네 주민 전체가 가세하는 대규모 집단 이벤트로 번져가게 된다. 그러나 희대의 이 사기극 코미디는 마지막 순간 이상한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눈물의 변주곡으로 꼬리를 감추고 마는데, 아직은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화두인 '통일'과 '이산가족'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코미디란 장르는 너무 가볍다는 사실에 집착해서일까?
아무튼 관객에 따라서는 극단의 반응을 보일 수 있는 클라이맥스 부분- 통일 사기극이 들통난 뒤 김 노인의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에서 빚어지는 눈물의 해후 장면 -이 아무래도 이 영화의 아킬레스건이 됨 직하다. '웃음'이란 인자에 의지하던 영화가 갑작스러운 상황변동으로 야기된 '감동'의 변수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언밸런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소리 없이 추락하는 감독의 덧없는 야망을 대변하는 듯하다.
1930년대 미국 암흑가를 배경으로 마이너집단의 눈부신 성공을 다루는 '스팅'에서의 치밀하고 통쾌한 두뇌 사기극과 통독 후 코뮤니스트 어머니의 충격을 완충시키려는 '굿바이 레닌'에서의 가슴 뭉클한 휴먼 사기극을 적당히 버무린 듯한 이 영화는 그래서 더더욱 안타깝게 봐야 할 작품이다. 언제나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통일'의 화두처럼.
윤정헌(경일대 미디어문학부 교수) sijeongjun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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