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문화산책 '석성석교수'
- 작성자
- 이미경
- 작성일
- 2005/03/14
- 조회수
- 995
영남일보 2005-03-12
[문화산책] 8㎜ 소형영화가 가끔 보고 싶다
석성석(경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시대가 교차하는 과도기에 생활하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영상분야만의 일은 아니다.
기록매체 중 많은 부분이 디지털화되고 이에 대응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방식도 지난 10여년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1896년 파리 그랑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그들이 개발한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를 보여준 것이 큰 충격이었듯이, 오늘날 디지털이란 말은 하나의 상표로, 첨단의 상징으로, 경쟁력의 보증수표로 산업, 교육, 문화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다. 이제 디지털이란 단어는 진부하리만치 일상적인 용어가 됐다.
한 통신회사 CF에 등장하는 래퍼의 노래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앞서가고 싶다면 나를 따라와라"처럼 이 시대는 협박과 회유로 우리들을 디지털 세상으로 내몰고 있다.
문득 80년대 8㎜ 소형영화 제작과 동호회 모임이 유행하던 시절이 기억난다. 당시 우리 사회는 8㎜ 필름의 다원적 가치와 사회적 효용성을 미처 탐색해 볼 겨를도 없이 개인적 측면에선 유행 흐름에 따라, 사회적 측면에선 경제논리로 8㎜ 필름을 폐기 처분했다. 이제 아날로그 비디오가 디지털 비디오에 의해 사살당하고 있다. 소비하고 폐기 처분하는 것만이 경제를 발전시키는 이 시대 유일한 미덕인 듯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8㎜ 필름을 유학시절 다시 만났다는 것이다. 유럽에선 8㎜ 시스템의 시각적 효용성을 다각도에서 접근해 디지털 시스템과 접목하고 있었다. 물론 미디어의 수명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매 시대별 미디어가 가진 가능성들을 생산적인 시각에서 꼼꼼히 접근, 연구하고 데이터로 남기는 것, 그리고 이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지털 미래를 차분히 준비하는 것이 우리 시대에 필요하다.
영화는 단순히 1896년에 태어나지 않았다. 한국 영상문화의 질적 발전과 보다 다원화된 이미지의 향유를 위해 절대적 가치가 아닌 상대적 가치를 사회에서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
오늘따라 베를린 함부르크 반 호프미술관 생각이 난다. 낡은 기차역을 개조한 늙은 건물의 외형 속에서 더욱 빛나던 첨단 영상작품들, 그리고 그 옆을 조용히 지키던 8㎜ 영사기의 깜빡이던 이미지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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