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매일-서울의 향토인들(경제부처-최경수前 교수)
- 작성자
- 이미경
- 작성일
- 2005/01/26
- 조회수
- 1609
매일신문 2005 01 25
서울의 향토인들-(4)경제부처
경제부처 포진 정책·예산편성‘쥐락펴락’
경제부처의 본류는 재경경제부와 기획예산처다. '거시경제정책'과 '예산'이라는 우리나라 경제의 두 축을 담당하고 있는 재경부와 기획예산처는 한솥밥을 먹다가 지난 국민의 정부때 분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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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원죄로 '공룡재경원'으로 지탄받던 재정경제원은 98년 재정경제부와 예산청, 기획예산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등으로 분리됐다가 곧바로 예산청과 기획예산위원회가 기획예산처로 통합되는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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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부는 이미 93년 옛 경제기획원(EPB)과 재무부(MOF)가 합쳐지는 조직개편의 아픔을 겪었다. 그런데 재경원이 재경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되고 상당수 EPB맨들이 기획예산처로 옮기면서 MOF출신들이 과장급 이상에 대거 포진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악화(MOF)가 양화(EPB)를 구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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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정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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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처에는 예전부터 영남보다 호남출신들이 더 많았다. 재경부도 예외는 아니다. 재경부에는 김광림(金光林) 차관(14회·안동)과 최명해(崔明海) 국세심판원장(17회·대구), 유재한(柳在韓) 정책조정국장(20회·대구) 권혁세(權赫世) 재산소비세심의관(23회·대구), 김병일(金炳一) EBRD대리대사(19회·상주), 노명구(盧明九) 비상계획관(육사26기.대구) 등이 있지만 경제수장 부처치고는 지역출신들이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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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권태신(權泰信) 정책기획비서관(17회·영천)과 재경부 세제실장과 국세심판원장을 지낸 최경수(崔庚洙) 조달청장(15회), 기획관리실장(1급)을 지낸 배영식(裵英植) 신용보증기금이사장도(13회·성주) 재경부출신이다. 김 차관은 안동농림고와 영남대를 나온 지방출신으로 경제팀의 수장부처인 재경부차관에까지 올랐다는 점에서 뛰어난 생존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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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했다가 고(故) 서석준(徐錫俊) 부총리가 기획원차관에서 상공부장관으로 갈 때 비서관으로 따라가는 바람에 여러 부처를 거쳤다. 국회예결위 수석전문위원으로 갔다가 특허청장을 거쳐 재경부로 되돌아왔다. 참여정부 출범때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수 차관 중의 한 사람이다. 94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시절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통합의 실무를 맡기도 했다.
.그가 국세청에서 상급부처인 재경부로 오게 된 것은 최경수 조달청장이 국세심판원장에서 중부지방국세청장으로 가면서 이뤄진 양부처 간의 인사교류차원에서 비롯됐다는 점도 이채롭다. 김병일 유럽부흥개발은행(EBRD)대리대사는 지난해 하반기에 영국으로 파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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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고, 영남대 경제과를 나왔다. 재경원과 재경부 재정투융자과장 등을 지냈지만 줄곧 세무대와 제2의 건국추진위, ADB연차총회준비기획단장 등 외곽조직관리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유 정책조정국장과 권 심의관은 재무부 금융정책과에서 호흡을 맞춘 MOF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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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국장은 매년 직장협의회에서 실시하는 직원들의 닮고싶은 공무원투표에서 1위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경북고와 서울대를 나온 유 국장은 IMF직후 금정과장을 맡아 금융과 기업구조조정을 주도하면서 금융시스템개혁에 공을 쌓았다. 바둑과 전자오락에도 능하다. 국고과장, 공적자금관리위 사무국장 국고국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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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심의관은 북대구세무서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재무부 세제실에서 소비세와 특소세를 담당했는데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의원이 당시 과장이었다. 국민의 정부때는 청와대 경제비서관실로 2년간 파견나가 있었고 총리실 산업심의관, 재경금융심의관 등으로 여러 부처를 총괄하는 일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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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하고 총괄하는 업무를 한 탓인지 그에게는 사소한 일에는 집착안하고 일을 호탕하게 처리한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노 비상계획관은 사대부고와 육사(26기)를 나왔다. 육군본부 지휘통제과장, 27사단 연대장, 2군사령부 작전처장에 이어 총리실산하의 비상기획위원회연습지원부장(대령)으로 예편, 99년부터 재경부 비상계획관으로 장기근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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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예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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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타부처에 비해 지역출신들이 많다 김병일(金炳日)장관(행시 10회·상주)을 비롯, 박인철(朴寅哲) 기획관리실장(16회, 대구), 정해방(丁海昉)재정개혁실장(18회·김천) 반장식(潘長植)예산총괄심의관(21회·상주),신철식(申喆湜)기금정책국장(22회· 칠곡), 이창호(李昌昊) 디지털예산기획단장, 유성걸(柳性杰) 국장(23회·안동) 등 적은 부처임에도 국장급이상이 7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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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장관은 오늘의 기획예산처를 만든 '산파'와 다름없다. 지난 98년 기획예산위원회 출범때 사무처장을 맡아 출범초기 궂은 일을 도맡았다. 99년 조달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2000년 차관으로 복귀했고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잠시 금융통화위원(차관급)으로 물러났다가 장관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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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원시절 공보관을 지낸 탓에 언론과의 관계에 적극적인데다 정부와 공공부문 혁신에 대한 소신이 강해 청와대의 신임을 얻고있다. 45년생인 김 장관은 뒤늦게 마라톤에 입문, 차관때부터 마라톤 풀코스 완주만 7차례에 이를 정도로 '마라톤매니아'라는 점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박 기획관리실장은 예산처의 맏형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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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간부들 중 최고참이다. 경북중, 경기고, 서울대를 나왔다. 그래서 TK집권 시절에는 경기고를 나왔다는 이유로, 또 그 이후에는 경북중 출신이라는 이유로 손해를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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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공화당 시절 국회 경과위원장을 지낸 4선의 고(故) 최재구 의원의 사위라는 점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그래선지 선이 굵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경원과장시절에는 한전민영화를 밀어붙일 정도의 뚝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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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고, 서울대를 나온 정 재정개혁실장은 예산총괄과장과 예산총괄심의관 등을 지내는 등 예산쪽에서 잔뼈가 굵은 예산통이다. 예산에 관한 한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할 정도로 해박하다. 차기 예산실장 0순위다. 정해창(丁海昌) 전 법무장관과 정해왕(丁海旺) 전 한국금융연구원장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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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예산총괄심의관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도 그럴것이 상주 함창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서울 덕수상고를 나와 외환은행을 다니다가 야간대학인 국제대(현재 서경대) 4학년 재학때 고시(21회)에 합격, '주경야독'의 신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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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변한 학벌이나 배경없이 예산실과 기획국이라는 재경원의 요직에서 10년간 근무하면서,'똑소리'가 날 정도로 일을 잘한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기획'과 '예산'의 전문성을 다졌다. 예산처로 와서는 공공사업효율화방안을 마련, 예비타당성조사실시라는 제도를 마련, 정부예산절감에 적잖은 공로를 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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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교통예산과장, 예산총괄과장에 이어 2003년 대통령직인수위를 거쳐 예산총괄심의관에 오르기까지 '예산통'의 길을 밟아왔다. 신 기금정책국장은 예산처의 '스타'로 통한다. 일도 일이지만 골프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에 능한 것은 물론 음반을 낼 정도로 노래실력이 출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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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회전도 빠르다. 신현확(申鉉碻) 전 총리의 아들이라는 점때문에 주목받기도 한다. 경기고 서울대를 나와 79년 행시에 합격, 총무처에서 수습행정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이후 80년부터 줄곧 경제기획원에서 예산쪽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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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속 지방분권 정부혁신위에 파견나가 디지털기획단장을 맡고있는 이창호 국장과 유성걸 국장도 빼놓을 수 없다. 유 국장은 경북고, 경북대를 나왔고 관리총괄과장을 지내다가 국방대학원에서의 1년간 파견교육을 마치고 보직대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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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내에서 일은 물론 아래 직원들을 잘 챙기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이밖에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있는 최경수(崔慶洙)박사도 있다. 최 보좌관은 서울대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 시카고대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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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경일대에서 잠시동안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는 노동문제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있는 노동문제전문가다. 노동연구원과 KDI에 있던 그가 장관정책보좌관으로도 일하게 된 것은 정부가 예산문제에 있어서도 노동문제를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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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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