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 윤정헌교수의 '시네마 라운지'
- 작성자
- 이미경
- 작성일
- 2004/12/03
- 조회수
- 1364
영남일보 위클리 포유 2004 12 02
[시네마 라운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체 게바라' 의 전설 담은 로드무비
순수한 청년의 민중 다가서기
남미대륙 풍광과 오버랩 시켜
미국인(로버트 레드퍼드)이 제작하고 브라질인(월터 살레스)이 감독하여 멕시코 배우(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가 주연한, 아르헨티나 출신 쿠바혁명 영웅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다룬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남미대륙의 풍광을 구석구석 훑어주는 그야말로 가장 라틴아메리카적인 인간생태학 보고서이다.
호기심과 열정에 넘치는 23세의 의대생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다섯살 연상의 괴짜 생화학자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4개월간 전 남미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결심한다. 낡고 오래된 '포데로사'라는 이름의 모터사이클에 몸을 싣고, 안데스 산맥을 가로질러 칠레 해안을 따라 사막을 건넌 후, 아마존으로 뛰어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 것. 텐트를 태풍에 날리고 오토바이를 잃는 등 갖은 고행 끝에 남미대륙의 최북단 베네수엘라에 이르렀을 때, 중산층 출신의 평범한 의학도였던 에르네스토는 민중의 고통을 뜨거운 가슴으로 감내하는 혁명아 체 게바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필자는 몇 년전 호주대륙의 동서를 횡단한 적이 있다. 영화에서의 남미대륙을 연상시키는 서부 호주의 대평원을 기차가 달리는 동안, 3박4일의 여정을 동승해 온 옆자리 호주여인은 혼혈아로 살아오며 부모에게 버림받고 남편에게 학대받아 5남매를 혼자 길러야 했던 자신의 기구한 인생여정을 담담히 되뇌었다. 무엇이 이 여인으로 하여금 처음 만난 황색 이방인에게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자신의 흉중을 고백하게 했을까? 우리는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미지의 대상과 인물로부터 때론 진리와 진실에 이르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여행 당사자 두 사람이 쓴 3권의 여행일지에 기초해 만들어진 로드무비다. 로드무비란 인물의 이동공간인 '길'이 단순한 풍경이나 배경으로 작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주인공 내면의 의식을 변모,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기능하는 영화를 일컫는다. 말하자면 길을 도구화한 일종의 성장소설적 성격을 띤 작품이다. 중산층 청년의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된 '길떠남'이 그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숱한 현실(가진 자와 권력의 횡포 속에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는 민중들의 비참한 모습)과의 조우 속에서 한층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역사적 여정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이를 뒷받침하는 남미대륙의 아름다운 풍광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것은 쿠바혁명의 살아있는 전설, 체 게바라에 대한 낭만적 경외감으로 이어진다.
윤정헌<경일대 미디어문학과 교수>sijeongjun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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