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윤정헌교수의 '시네마 라운지'
- 작성자
- 이미경
- 작성일
- 2004/10/11
- 조회수
- 1796
[시네마 라운지] 80일간의 세계일주
영남일보 위클리 포유
2004 10 . 07
성룡식 액션의 고전 비틀기
기발한 패러디에 덧칠한 피카레스크式 경박함
영국신사 모험담 중국청년의 애향심으로 변형
성룡 주연의 '80일간의 세계일주'는 프랑스의 SF작가 쥘 베른이 1873년에 발표한 피카레스크(방랑형 모험담)식 과학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비교적 원작에 충실했던 데이빗 니븐 주연의 전작 영화(마이클 앤더슨 감독, 1956년 워너 브러더스 제작·배급)가 1957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한 5개 부문을 석권할 정도로 성공했음을 의식한 때문인지 처음부터 정공법을 포기하고 패러디에 의한 측면기습을 시도했다.
그리하여 과학적 사고와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한 영국 신사의 세계일주 모험담을 고향마을의 안녕과 수호를 위해 빼앗긴 옥불상을 되찾아 갖다 놓으려는 중국청년(빠스빠르뚜로 위장한)의 애절한 망향가로 비틀어 변주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비틀림의 중심엔 성룡이란 거물 액션배우가 자리하고 있다.
패러디란 한마디로 '풍자적 모방'을 의미한다. 원작의 전반적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 묘미. 따라서 반드시 대중인지도가 있는 유명작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방화 '투캅스'가 표절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은 국내 흥행에서 실패했던 음지의 프랑스 영화 '마이 뉴 파트너'를 모방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성룡이란 동양판 액션의 귀재를 주인공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재구성한 일련의 스토리를 관객들은 대번에 알아차린다. 원작의 유명세에서 오는 차별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성공한 전작과 원작소설의 사전인지를 통해 주인물과 부인물이 뒤바뀌었으며(영국귀족과 하인의 작중 위상 변화), 이에 따라 이들의 유랑배경(중국쪽 배경분량의 상대적 증가)과 그 포인트(동양문명권에 대한 상대적 관심 제고)가 변모되었음을 확연히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기성작품의 정보와 유명세에 편승해 의도적으로 원작을 풍자함으로써 또 다른 신선한 감동을 추구하려는 패러디의 기능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80일간의 세계일주'를 기성의 서양중심적 시각이 아닌 또 다른 화두에서 접근토록 하게 한다.
그러나 패러디의 약점은 진지함의 결여에 있음을 '한물간 성룡의 액션과 개연성 없는 억지 스토리'에서 확인하는 순간, 왠지 씁쓸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윤정헌<경일대 미디어문학과 교수>sijeongjun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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