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영남- 윤정헌교수의 '시네마 라운지'
- 작성자
- 이미경
- 작성일
- 2004/09/23
- 조회수
- 1890
영남일보 '위클리 포 유' 2004 09 23
[시네마 라운지] 슈퍼스타 감사용
꼴찌에게 보내는 감동적인 갈채
'삼미 스타즈' 와 1980년대 한국 야구
'사실'과 '허구'사이 의미있는 변주
추석대목을 겨냥한 방화 중 '슈퍼스타 감사용'이 프로야구 원년의 향수에 젖어있는 올드팬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1982년 당시 프로야구의 온갖 패전 관련 기록을 독차지하고 있던 희대의 도깨비팀 '삼미 슈퍼스타즈'엔 아이러니컬하게도 단 한 명의 슈퍼스타도 없었고 가진 것이라곤 형언할 수 없는 무력감과 좌절감(이기고 있으면 왠지 불안하고 역전당하면 오히려 홀가분해지는) 뿐이었다. 이들을 세간에선 '슬퍼스타'라고 빈정거렸고 투수 감사용은 이들 중에서도 가장 아웃사이더, '굴러 들어온 돌'(아마추어 공채출신)이었다.
'슈퍼스타 감사용'은 이 시대의 모든 꼴찌들에게 보내는 유쾌하고도 진중한 응원가이다.
꼴찌팀의 패전처리 전문이던 감사용이 박철순(OB투수)의 20연승 대기록 제물이 되기를 꺼린 동료들을 대신해 꿈에 그리던 선발출장을 한 원정게임. 영화는 총제작비의 30%를 쏟아부으며 이 한 게임의 에피소드에 매달린다. 그만큼 라스트에 배치된 이 경기는 영화의 핵심적 플롯이다. 관객들은 우리의 슬픈 꼴찌 주인공이 대반전(박철순의 대기록을 가로막고 승리)을 일으키길 은근히 기대하지만 감독은 끝내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다(1982년 박철순은 22연승의 대기록을 세웠다). 역사적 사건이나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지켜야 할 최후의 마지노선을 이 영화는 끝까지 지킴으로써 어설픈 '대리만족'에서 벗어나 가슴 찡한 감동을 추구한다. 관객들에 떼밀려 박철순 앞에까지 가게 된 감사용의 공을 뺏어 박철순이 사인을 해주는 장면, 자전거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투수 면접장에 도착하는 장면, 양승관의 악역과 금광옥의 희화화, 경기 중 감사용의 충돌과 택시기사인 형의 교통사고 장면의 동시포착 등 '사소한 허구'의 퍼즐을 통해 관객들을 마취시켜 오던 감독은 결정적인 순간에 '허구'와 결별하고 '사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우리 최초의 역사소설 '목매이는 여자'(1923년 박종화 지음)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변절자가 되었지만 이를 수치스러워 한 아내의 자살 앞에 망연자실하는 신숙주의 인간적 고뇌를 '사육신 사건'이란 실재한 역사에 담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사료에 의하면 신숙주의 부인은 '사육신 사건' 이전에 이미 병사했다. 극적 효과를 위해 죽은 부인을 되살려 자살케 한 '목매이는 여자'와 우리의 슬픈 스타 감사용을 위해 어떠한 인공조미료도 첨가하지 않고 그날의 패배를 고스란히 재연하는 '슈퍼스타 감사용'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아직도 그 때 그 순간을 뚜렷이 기억하는 숱한 팬 혹은 이 시대의 무수한 '감사용'들에게 보내는 진정어린 화답으로서의 의미가 있기에.
윤정헌<경일대 미디어문학과 교수>sijeongjun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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