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대구-지역대 선배들의 성공기
- 작성자
- 이미경
- 작성일
- 2005/01/03
- 조회수
- 1552
대구신문 2004 01 03
<사회> 신년호 특집-졸업생을 통해 본 지방대 육성.
학생수 감축과 수도권 대학 선호현상으로 지방대학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특히 경기침체 장기화와 취업난등으로 수험생들은 '기회만 되면 서울'로 진학할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마냥 2류 인생만 사는 것이 아니다.
지방대를 졸업한 것을 오히려 기회로 삼고 더욱 열심히 노력해 사회 지도층으로 성장한 인물도 도처에 있다.
지방대 재학생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지방대를 졸업한 후 피나는 노력으로 성공이란 결실을 맺은 사람들을 만났다.
<편집자주>
◇진재근 성원건설(주)회장
"항상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생활하면 길이 보인다. 건축기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졸업생이 유명기업만 선호하지 않으면 일자리는 도처에 있다"
(주)성원, 성원넥세스,(주)비엠에스건설,(주)도원 등 7개 계열사를 거느린 진재근(주)성원건설 회장의 얘기다.
경일대 전신인 청구공전을 졸업한 진 회장은 후배들에게 유독 희망과 성실을 강조한다.
진 회장은 지난 71년 졸업과 동시에 군대에 입대, 김신조 사건으로 36개월을 채운 후 제대했다.
제대후 진회장은 구미에서 중국집, 식육점을 하다 실패한 후 공사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꿈을 키웠다
추운 겨울 보온도 안된 도시락을 품에 안은 채 눈물을 머금은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때 진회장은 맘속으로 '꼭 건설회사 사장이 되겠다. 성공하면 벤츠를 타야겠다'는 두가지 약속을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막노동을 하던 진 회장은 지난 76년 작고한 이종민 청구공전 교수의 추천으로 대구에 있는 진영건설에 입사한다.
진회장은 어렵게 한 취업이기에 명절도 잊은채 남들 보다 2~3배이상 노력했고 결국 진영건설 사장 눈에 띄게 됐다.
이후 진 회장은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춥고 어려웠던 시절에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84년 독립,(주)성원건설을 설립해 현재 연 매출 200억원의 중견기업인으로 성장했다.
진 회장은 아직도 200원 짜리 면도칼을 사면 칼날이 무뎌질때까지 사용해 직원들이'면도칼 사장'으로 부를 정도다.
최근 춘.추복 2벌을 마련했다는 진회장은 "후배들도 자포자기나 패배의식을 갖지 말고 성실히 노력하고 열심히 생활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생긴다"고 말했다.
경일대 총동창회 부회장,건축학과 총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진회장은 젊은 시절 하루 3~5시간씩 자며 몸을 혹사한 휴유증이 최근 조금씩 나타난다며 쓴 웃음을 지은 후 지방대학 출신 특히 동문 후배들이 자신감과 희망을 가질것을 당부했다.
◇박동준 패션디자이너.
지역은 물론 국내 패션계에서도 손꼽히는 박동준 패션디자이너(54)는 계명대 영문학과 출신이다
매년 5회이상 해외로 나가 최첨단 패션감각을 익히고 있는 박 디자이너는 해외유학도 하지 않은 순수 토종이면서도 유학파 보다 감각이 낫다는 평을 듣고 있다.
지난 73년 대학졸업과 동시에 모친이 운영하는 20여평 남짓한 양장점에서 사회 첫발을 내디딘 박씨는 당시를 "22살의 젊은 나이에 패션이란 단어도 생소한 70년대 옷을 만들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손님들의 차가운 시선, 옷을 맞춰 놓고도 찾아가지 않아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뛸 지경이다"고 회상했다.
박씨를 오늘의 유명 패션디자이너로 만든 것은 누구도 아닌 '자신'이다.
온갖 수모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박씨는 '최고가 돼야한다'는 다짐을 수 없이 하며 초창기 10년간은 공휴일과 연휴도 잊은 채 하루 4~6시간 만 자며 노력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박씨는 8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30년간 모은 돈으로 중구 대봉동 대백프라자 맞은편에 지하 1층~지상 6층 규모의 건물을 짓게 됐다.
계명대 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박씨는 "장녀라는 신분과 패션을 하면서 부모님의 재산을 탕진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유학'도 스스로 포기했다"며"젊은 시절 꿈을 위해 매진했으며 후배들도 지방대 출신이라는 데 얽매이지 말고 긍정적 사고를 갖기 바란다"고 말했다.
또 "인터넷과 교통발달, 네트워크 구축으로 지방대 학생들이 지역에 있어도 수도권은 물론 전세계에서 발생하는 일과 자료를 접할수 있어 열심히 생활하면 다양한 진로를 개척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무경 효림산업 사장.
"생소한 분야에 첫 진출하면서 직원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직접 청소도 했다. 6개월간은 자동차 사전을 이용해 단어 부터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했으며 밤을 새운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대구가톨릭대 전신인 효성여대 도서관학과에 지난 77년 1기로 입학, 81년 졸업한 한무경 (주)효림산업 사장의 얘기다.
한 사장은 당초 대학에 남는 것이 꿈이어서 졸업후 82년 이화여대 대학원에 입학, 석사과정도 마쳤다.
이후 효성여대,전북대,대구대 등에서 강의를 하는 등 목표를 위해 한걸음씩 나섰다.
하지만 IMF이후인 98년 한 사장에게는 효림산업의 전신인 모 기업 자동차 부품공장을 인수할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고 이를 선택하게 됐다.
한 사장은 목돈과 경험이 전무한 상태인데다 인수 계약서에 서명한 후 2일도 안 돼 부품에서 하자가 발생, 크레임에 걸려 수출,내수시장에 내놓은 부품들을 전부 회수해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
한 사장은"당시 전재산을 털어 시작한 사업이라 암담하고 좌절도 있었지만 꼭 성공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텼다"며"이때 직원들이 많이 도와주었고 그 결과 지금의 회사를 이루게 됐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사장은"후배들이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로 패배의식을 갖는 것은 스스로를 나약하게 만드는 것이며 경험도 없는 분야에서 피땀흘려 노력해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많다"고 강조했다.
한 사장은 98년 연매출 16억원의 공장을 인수, 지난해 416억원의 매출을 올리는등 회사가 매년 급신장 하고 있지만 언제나 작업복을 입은 채 근무를 하고 직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 경일대 김현성 컴퓨터 공학과 교수
33살의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 권위 인명사전인 미국 마르퀴스사가 발간하는 과학공학인명사전(Who's Who in Science & Engineer)에 2회 연속 등재된 경일대 컴퓨터 공학과 김현성 교수.
김 교수는 부산 동래상고를 졸업한 후 89년 경일대 전신인 경북산업대 컴퓨터 공학과에 친척들의 소개로 입학했다.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 못한 김 교수는 93년 특전사 9공수 부대를 제대한 후 복학, 학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자취를 한 김 교수는 새벽 6시 기상과 함께 도서관에 도착, 밤10시까지 공부에 전념한 결과 3~4학년때 전면 장학금을 받게 됐다.
이후 김 교수는 96년 경북대 대학원에 진학해 98년 석사, 2002년 박사과정을 마쳤다.
대학원 시절에도 김 교수는 새벽 6시 외국어 학원에서 영어 강의를 들은 후 곧바로 경북대 도서관을 찾아 밤늦도록 영어, 전공공부에 매달렸다.
이같은 노력으로 대학원 시절 교수들로 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박사과정을 마칠때에는 세계최고 인명사전인 Who's Who에 등재됐고 2002년 3월 경일대 전임강사로 부임하게 됐다.
현재 프로그램 언어인 자바를 강의하고 있는 김교수는 강의때 마다 '성실히 공부하면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김교수는 "경일대 입학동기 40명 중 6명이 대학교수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히 길이 보인다"고 강조했다.
남승현기자 namsh2c@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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